강 해/창세기(1-11)

창세기 11장 10절 - 26절

예수님 사랑합니다 2025. 5. 6. 10:33

10 이것이 셈의 후대라. 셈이 일백 세였을 때, 즉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성령님께서는 다시 역사기록을 재개하신다. 성경께서는 셈의 족보를 제시하여 독자들에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조상들을 보여주신다.

이 족보를 읽다보면 셈족 후손들의 수명이 점차로 줄어든 사실을 알 수 있다. 창5장에 나오는 아담의 후손들의 족보와 비교해 보라. 셈은 600세, 아르박삿은 438세, 살라는 433세까지 살았고 수명은 족보가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줄어든다. 스룩은 230년 나홀은 148년밖에 못살았다. 이것은 분명 지구상의 대기권에 발생한 엄 청난 변화에 기인한다. 인간의 수명을 900여 세에서 100여 세까지 끌어내릴 정도의 변화라면 전혀 변화가 없는 상황으로 가장하고 만들어지 시대측정방법들(Libby 14)은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내세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들의 지성과 문화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과학에 매료될지 모르지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런 속임수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기원후 200년에 살았던 저스틴 마터는 바로 그런 기독교 지성인으로 (적어도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그의 설교와 글에 과학적 사실에 모순되는 것이 있을까 노심초사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의 지성인들로부터 조롱당할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조롱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당연한 유업의 일부이다.(행2:13 17:32 눅23:11,36)

행2:13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더라.

행17:32 그 사람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비웃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에 관해서 다시 듣겠다."고도 하더라.

눅23:11 그때 헤롯이 자기 군사들과 더불어 주를 멸시하고 조롱한 후에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다시 보내더라.

눅23:36 그때 병사들도 주를 조롱하고 가까이 와서 식초를 주며

고전15:1-4에 나오는 단순한 복음을 전해봐라. 당신은 조롱과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교양있는 크리스챤 지성인들에게 묻겠다. 과학자들의 도움이 전혀없이 시체가 무덤에서 나와 북극성을 향해 우주비행을 하는 것을(첫 번째 부활)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과학이 성경과 다른 사실을 말하면 과학은 무지한 사람들이 성경을 경멸하는 것과 똑같은 경멸을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해 둔다.(딤전6:20)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고전15:2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딤전6:20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

이 곳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나이는 야곱 벤 하임(Jacob Ben Chayim)의 히브리어 본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기원후 350년에 쓰인(기원전 25년이 아니다) 히스키안 사본에는 변개되어 있다.(아르박삿 438세가 535세로, 살라 433세가 460세로, 에벨 464세사 404세로) 70인역을 보고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실제 70인역이라는 것은 없다. 이 70인역은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이론처럼 헬라어 성서학자들이 주관적으로 조작해댄 것이다. 소위 70인역은 바울이 처형당하고 300년 이후에 쓴 사본들로 구성되어 있고 주고 히브리어 본문을 변개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사마리아 모세오경은 11,13,15,17,19절에 ‘그리고 그는 죽었다.’라는 말을 첨가시켜서 창5장의 족보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금지시킨 그 행위일 뿐이다.(신4:2 잠30:6 계22:18-19)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오류없이 섭리로 보존한 성경을 그대로 믿는 다.

신4:2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지니라.

잠30: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 분이 너를 책망하실까 함이며 네가 거짓말쟁이가 될까 함이라.

계22:18-19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소위 70인역이라고 하는 것에는 12절에 카이난이란 이름이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 대상1:18에 보면 그 이름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짓이야말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서기관들이(기원전 150-300) 저지른 본문 조작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대상1:18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으니라.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이(1800-1970) 이와같은 본문 조작의 증거에도(이외에도 수십 개가 있음) 불구하고 여전히 70인역의 정체에 대해 오리무중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카이난의 이름을 창11:12에 삽입시킨 자는 눅3:35-36의 본문을 앞에 놓고 고쳤다. 어째서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70인역은 신약성경을 앞에 놓고 신약에 인용되어 있는 구약성경을 신약에 인용되어 있는 그대로 고쳤다. 이 사실은 구약성경의 일부가, 창11:12도 그 한 예이다, 고쳐져 있는 사실로 입증된다. 이 사실을 학자들이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살펴보자.

눅3:35-36 나홀은 사룩의 아들이요, 사룩은 라가우의 아들이요, 라가우는 팔렉의 아들이요, 팔렉은 헤버의 아들이요, 헤버는 살라의 아들이요, 살라는 카이난의 아들이요, 카이난은 아르박삿의 아들이요, 아르박삿은 셈의 아들이요, 셈은 노아의 아들이요, 노아는 라멕의 아들이요

*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70인역을 사용했다. 이는 신약성경에 인용된 구약성경의 내용과 70인역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 누가복음 3장의 카이난은 70인역에서 족보를 보고 기록한 것이다.

* 바티칸사본(B)과 시내사본(Aleph, A.D. 350)은 프톨레미 필라델피우스의 명령에 의해 B.C. 250년에 쓰였다.

이에 대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답변은 이러하다.

*1세기 당시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70인역이 있었다 할지라도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창11:12은 그리스도의 승천 후 320년쯤 지나 헬라어로 필사되었는데, 눅3:35-36은 정확한 본문이며 누군가가 이 본문을 보고 하나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카이난을 재 삽입시켰다.

*일반주석서들에서 70인역(혹은 알렉산드리아사본)으로 인용된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은 사도행전 1-10장 사건이 있은 후 300년이 지난 뒤에 쓰였으며 70인역으로서가 아니라 신약성경 기록 이후에 기록된 외경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70인역을 인용하면서 그것은 B.C. 250년에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그 70인역이 아님을 밝히지 않은 모든 주석은 독자들을 의도적으로 속이려 하는 엉터리 주석일 뿐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주석 95%가 이에 해당된다.

오리겐, 심마쿠스, 테오도티안, 아퀼라와 그의 동료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가 조작한 편지의 도움을 받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도와드렸다. 이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구절을 일치시키려고 할 때 후대의 학자들에게 위대한 봉사를 하고 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짓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킨 것뿐이다.(렘23:36)

렘23:36 너희는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켰음이라.

11 셈은 아르박삿을 낳은 후 오백 년을 살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년을 살고 살라를 낳았고

13 아르박삿은 살라를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14 살라는 삼십 년을 살고 에벨을 낳았고

15 살라는 에벨을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여기에 열거된 아름들은 창5:4의 아담의 계보가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하고 있지 않듯이, 셈의 모든 후손은 아니다. 셈의 후손에는 인도, 중국, 한국 그리고 태국, 파키스탄 및 시베리아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들도 포함된다. 에벨에 관한 설명은 창10:25을 보라.

창5: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창10: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아들의 이름은 펠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펠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탄이며,

16 에벨은 삼십사 년을 살고 펠렉을 낳았고

17 에벨은 펠렉을 낳은 후 사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18 펠렉은 삼십 년을 살고 르우를 낳았고

19 펠렉은 르우를 낳은 후 이백구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20 르우는 삼십이 년을 살고 스룩을 낳았고

21 르우는 스룩을 낳은 후 이백칠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22 스룩은 삼십 년을 살고 나홀을 낳았고

계속해서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 에벨은 464세, 펠렉은 320세, 르우는 239세, 스룩은 230세, 나홀은 148세까지 살았다. 창5:1=20에서는 100세에 아이를 가졌으나 살라는 30세에, 에벨은 34세, 펠렉은 30세에, 르우는 32세에, 스룩은 30세에 그리고 나홀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를 29세에 낳았다.

23 스룩은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24 나홀은 이십구 년을 살고 테라를 낳았고

25 나홀은 테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26 테라는 칠십 년을 살고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스룩은 히브리어로 ‘확고함, 힘’이란 뜻이고 나홀은 ‘찌르는 자 혹은 헐떡거림’이란 뜻이며 테라는 ‘돌아감 혹은 지체함’이란 뜻이다.(이주라는 말과 어근이 같다)

테라는 나이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다. 아브람은 테라가 70세 때 태어났고 테라는 이후 135세를 더 살아 총 205세까지 산 셈이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란을 출발할 때 75세 였고 이 때 테라의 나이는 145세였다. 그렇다면 테라는 60년을 더 살게 된다. 그러나 창11:32에 따르면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기 전 테라는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이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사마리아오경은 테라의 나이를 205세 대신 145세로 낮추었고 하나님을 돕기 위해 70인역도 테라의 나이를 135세로 만들었다. 이 모든 시도는 행7:4을 본문과 일치시키려는 시도 였다. 그러니까 70인역을 만든 사람은 앞서 말한 대로 사도행전 본문을 앞에 놓고 행7:4에 입각해서 구약성경을 뜯어 고친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모순되는 것같아 보여서 선한 의도(창3:6의 이브의 의도를 참조하라)로 성경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그리했다고 변명하겠지만 모든 선한 의도들 역시 지옥에 이르는 길인 줄 몰랐단 말인가?(잠14:12)

행7:4 그가 칼대아인의 땅에서 나와 하란에서 살았고, 그의 부친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그 곳에서 여러분이 현재 살고 있는 이 땅으로 옮겨 주셨느니라.

창3:6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즐겁고,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인지라. 그녀가 거기에서 그 열매를 따서 먹고 그녀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그가 먹더라.

잠14:12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이니라.

겉보기에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은 이 문제 역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신뢰하고 성경에서 답을 찾는다. 테라는 기원전 2126년에 태어났고 205년을 살고 1921년에 죽었다. 그의 나이 70세 때(2056년) 그는 아브람이 아니고 나홀을 낳았다. 성경은 아브람의 형재들의 나이 순서도 셈, 함, 야펫의 생일순서도 명확히 나와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창5:32 6:10)

아브람은 테라가 130세인 1996년에 태어나 테라가 205세가 되어 죽은 1921에 75세였다. <킹제임스성경 1611>은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반면 사마리아오경과 70인역을 비롯한 다른 성경들은 전혀 믿을 바가 못된다. 학자들이 성경에 모순이 있다고 절절매는 동안 성경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쉽게 해답을 찾아낸다.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이때부터 성경은 다시 개인의 역사로 되돌아 간다. 창11:26까지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은 아담, 아벨, 노아, 에녹였다. 드디어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들의 조상뻘인 아브라함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기원전 1996년)

기원전 1996년은 2000년과 불과 4년 차이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천년왕국의 시작전인 기원후 1996년과 관련되어 뭔가 시사하ᅟᅳᆫ 바가 있다.

아브람은 노아로부터 시작해 10대손이며 그는 히브리인(창14:13)이라고 불렸다. 그는 할례받지 않은 셈족으로서(롬4장) 이교도로부터 뇌물 혹은 보상을 거부했으며(창14:22-23) 십일조를 바쳤고(창14:20) 믿음으로 불가능한 것을 믿었고(창15:6) 참 하나님께 희생제를 드렸고(창15:9-10) 하나님의 명령을 반문없이 순종했고(창17:26) 형제를 위해 기도와 중보를 드렸고(창18:23-33) 실제적인 부활을 믿었으며(창22:5) 그것도 진리에 자기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걸면서까지 믿음을 실행했다.(창22:10)

21세기 사람들로서는 실로 입이 딱 벌어지는 놀라운 사람이다. 실로 그는 하나님의 친구였다.(약4:4)

창14:13 도망쳤던 자가 와서 히브리인 아브람에게 말하였으니, 아브람은 아모리인 마므레의 평지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콜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들이더라.

창14:22-23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주께 내 손을 드니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네가 말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끈이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창14:20 너의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 하니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일조를 그에게 드리더라.

창15: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

창15:9-10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 하시니 그가 이 모든 것을 그에게로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가운데로 쪼개 그 쪼갠 것을 서로 마주 대하여 놓았으나, 새들은 쪼개지 아니하였으니

창17: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으며

창18:23아브라함이 가까이 다가가서 말씀드리기를 "주께서 의인들을 악인들과 더불어 멸하려 하시나이까?

창22:5 아브라함이 그의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머물라. 나와 아이는 저기로 가서 경배드리고 다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창22:10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이삭을 죽이려 하는데

약4:4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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