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날 왕 아므라펠의 때에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크돌라오멜과, 민족들의 왕 티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소알에 있는 벨라 왕과 싸우니라.
아므라펠 : ‘강력한 백성’ 혹은 ‘어둠의 격언’이란 뜻으로 앗시리아에서 발견된 서판에 나와있는 ‘함무라비’이다.(암무라비는 아므라펠을 음역한 것이다.) 이 사람은 다름 아닌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함무라비 대왕일 것이다.
이 인물은 얼마 동안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아므라펠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다가 R.D. Willson의 <구약의 과학적 연구, A Scientific Investigation of the Old Testament>라는 책을 재발행하면서 편집자들은 윌슨 박사의 이론을 대체해 버렸다. 새로 발행된 책의 난외주에 보면 1940년까지의 모든 근본주의 주석가들은 마치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의 이점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므라펠은 시날 왕이었는데 기원전 1900년경 시날 왕은 함무리비였다. 그는 43년 동안 통치했었다.
아리옥 : ‘사자 같은’이란 뜻으로 서판에는 에리-아쿠(Eri-aku)로 나와있고 그의 어머니는 크돌라오멜의 누이였다.
크돌라오멜 : ‘도르래를 묶음’이란 뜻으로 서판에는 ‘Kudur-Lahgumal’이라고 나와 있다.
티딜 : ‘찬란 혹은 명성’이란 뜻으로 서판에는 ‘Tudghula’로 나와 있다.
베라 : 소돔왕으로 ‘악에 처한’이란 뜻이다.
비르사 : ‘사악함’이란 뜻이다.
시납 : ‘아버지를 바꿈’이란 뜻이다.
세메벨 : ‘건너간 자의 이름’ ‘영웅적 업적의 찬란함’이란 뜻이다.
함무라비 대왕이 분명 아무라펠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아므라펠을 그저 시의원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주석가들이 마치 히브리 역사를 실제 역사의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로부터 고립시키려고 음모를 꾸민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창14:1에 나오는 “시날 왕”은 바빌론 제국을 건설한 왕과 인척관계로 오늘날로 치면 UN의 총수격이었다. 노아의 홍수는 B.C. 2347년에 있었고 쿠스가 님롯을 낳았을 때는 B.C. 2247년 혹은 B.C. 2200년경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창11:10-25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수명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창11:10 이것이 셈의 후대라. 셈이 100세였을 때, 즉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셈은 아르박삿을 낳은 후 500년을 살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아르박삿은 35년을 살고 살라를 낳았고 아르박삿은 살라를 낳은 후 403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살라는 30년을 살고 에벨을 낳았고 살라는 에벨을 낳은 후 403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에벨은 34년을 살고 펠렉을 낳았고 에벨은 펠렉을 낳은 후 430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펠렉은 30년을 살고 르우를 낳았고 펠렉은 르우를 낳은 후 209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르우는 32년을 살고 스룩을 낳았고 르우는 스룩을 낳은 후 207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스룩은 30년을 살고 나홀을 낳았고 스룩은 나홀을 낳은 후에 200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나홀은 29년을 살고 테라를 낳았고 나홀은 테라를 낳은 후에 119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만약 님롯이 바벨탑을 건축한 장본인이었다면 B.C 2200년도 아직 너무 이른 시기인 것같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는 B.C. 2126년에 태어났으므로 님롯과는 불과 74년 차이(2200-2126=74)다. 따라서 시날 왕은 언어의 혼란 사건과 약 100년 간의 시차를 두고 있다. 또한 바벨탑을 건축했던 사람들도 B.C. 2000년까지 아직 흩어지지 않았을 터인데 바로 그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갈데아 우르지역에서 불러냈다. 함무라비가 아므라펠에라는 3가지 증거는 다음과 같다.
① 암무라비는 아므라펠을 갈데아어로 음역한 것이다.
② 이 왕은 크돌라오멜(창14:5)과 연맹을 맺었는데 이들 연합군은 거인들을 물리칠 정도로 강력하였다.
③ 시날은 이 당시 엘람을 섬기고 있었다.
창14:5 14년째에 크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트롯 카르나임에서 르파인을, 함에서 수스인을, 사웨 키랴다임에서 엠인을 치고
앗시리아 서판에 보면 엘람은 바빌론을 정복하여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아므라펠은 시날 북쪽을 그리고 아리옥은 시날 남쪽을 다스리고 있었다. 서판에 따르면 티달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아르메니아 지역에 살던 야만적인 쿠르드족으로 알려진 움만만다(Ummanmanda)를 구성하고 있었다. 아드마와 스보임 역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당한 평지의 성읍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신29:23)
신29:23 거기 온 땅이 유황이 되고 소금이 되며 불타서 심지도 못하고 열매를 내지도 못하며 거기에서 어떤 풀도 자라지 못하는 것이, 주께서 그 분의 성내심과 그 분의 진노하심 가운데서 멸망시키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도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북동쪽(시리아, 엘람, 시날)의 4왕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남서쪽의 요단 평지(창13:10)를 공격하여 5왕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5왕들은 수가 적고 무장이 덜 되었지만 창6:1-6의 결과 이 땅에 거하게 된 르파인, 수스인, 엠인들이 그들에게 동참하고 있었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의 온 평지를 바라보니 어느 곳이나 물이 넉넉하더라. 그곳은 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이었으니, 주의 동산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아 마치 소알에 온 것 같더라.
3 이들 모두가 염해에 있는 싯딤 골짜기에 함께 모였더라.
염해는 오늘날의 사해로 해발보다 400m가 낮은 지역이다. 길이는 75km 폭은 15km이며 바다보다 8배나 짜다. 이 속에는 680억 달러 어치의 탄산칼륨 13억 톤과 2520억 달러 어치의 브롬화물 8억4천만 톤, 1166억 4천만 달러 어치의 석고 8천만 톤 그리고 7970억 달러 어치의 마그네슘 염화물 2200만 톤이 들어있다.
이 구절은 창13:14에서 아브람이 팔레스타인 땅을 두루 바라보았던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창19장 이전에는 요단평지가 사해주변 전지역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롯이 동남쪽으로 갔으므로 그는 벧엘과 아이로부터 오늘날 사해의 해저에 해당하는 곳에(벧후2:6) 세워져 있던 5성읍들의 제일 도시(소돔)으로 향했을 것이다. 창14:3에서 싯딤 골짜기는 염해이다. 하지만 모세는 이 사건이 일어난 500년 후에 창세기를 기록했다.
창13:14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진 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부터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벧후2:6 또 소돔과 고모라 성읍들을 무너뜨림으로 정죄하여 재가 되게 하셔서 후세에 경건치 않게 살 자들에게 본으로 삼으셨으며
4 그들이 십이 년 간 크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십삼 년째에 반역하였더라.
13이라고 하는 불길한 숫자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이곳에서 언급되며 이 숫자는 반역과 연관되어 있다. 이 문제는 여기서 다루기는 너무도 긴 주에이다. 하지만 13공포증은 다른 어떤 곳에 대한 공포증과 마찬가지로 매우 성경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예증 가운데 몇 개 들어보자면 백악관의 건축은 금요일 13일에 시작되었고 윌슨 대통령은 12월 13일에 브레스트 시(프랑스 서안의 항구)에 상륙하여 동맹자 13사람과 함께 13개 항으로 된 국제연맹헌장 초안을 제출했다. 국제연맹, League of Nations는 히브리어로 B-A-B-E-L이다. 미국에서 처음 실시된 선거는 금요일 13일이었다. 왕국을 가져오자는 켐페인을 주도하는 적극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낙관주의자들은 13명의 하원의원이 시민권(미헌법 13,14 수정조항) 법안을 기초했으며 이 법으로 인해 미국의 교육은 끝장이 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5 십사 년째에 크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트롯 카르나임에서 르파인을, 함에서 수스인을, 사웨 키랴다임에서 엠인을 치고
6 호리인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옆에 있는 엘파란까지 이르렀으며
신2:10 과거에 엠인들이 거기 거하였는데 그들은 아낙인들처럼 강하고 많으며 키가 큰 백성으로
신2:12 전에는 세일에 호리인들도 거하였으나 에서의 자손들이 그들을 정복하고 그 자손들이 그들 앞에서 그들을 멸하고 그들 대신 거하였으니,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의 소유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행했던 것과 같았느니라.
신2:20 그곳도 거인들의 땅으로 여겨졌으니, 옛날에 거인들이 그곳에 거하였으며 암몬인들은 그들을 삼숨인들이라 부르니라.
신2:22 이는 주께서 세일에 거한 에서의 자손 앞에서 호리인들을 멸하신 것과 같았더라. 그들이 뒤를 이어 이날까지 그들 대신 거하였더라.
이 살육은 갈릴리 근처 요단 동편에서부터 시작하여 바산을 지나(신3:11) 아르논과 얍복(요단동쪽)을 건너 에돕의 세일산까지 내려왔다. 이 공격은 사해 동쪽 들 지역까지 였을 것이고 그곳이 초장이나 역청구덩이들이었다면 (창14:10) 사해 전지역을 다 포함했을 것이다.
신3:11 거인들 중에 남은 자로는 바산 왕 옥만 남았으니, 보라, 그의 침상은 철로 만든 침상이라. 그것이 암몬 자손의 랍바스에 있지 않느냐? 그것은 사람의 큐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큐빗이고 그 너비는 네 큐빗이라.
엘파란은 새로운 역본들과 주석에서는 파란의 상수리나무 혹은 테레빈나무라고 변개되엇다. 뭐든지 전부 상수리나무나 테레빈으로 만들어 버릴 권리를 부여받았는가? 엘파란은 파란의 상수리나무가 아니고 파란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창14장의 예표되어 있는 재림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다.(합3:3)
합3:3 하나님은 테만으로부터 오시며 거룩하신 분은 파란 산으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들을 덮으며 그를 찬양함이 땅에 가득 찼도다.
7 그들이 돌이켜 카데스에 있는 엔미스팟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세손타말에 사는 아모리인을 치니라.
8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왕(그는 소알 왕이라.)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9 다섯 왕이 엘람 왕 크돌라오멜과, 민족들의 왕 티달과, 시날 왕 아므라펠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과 싸웠더라.
네 왕들의 공격은 단순히 사해 남쪽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서쪽으로 진행되어 아말렉인들의 영토에까지 미쳤다.(사해 남서부 지역) 이 지역의 공격은 귀환시에 이루어졌는데 이들 북서쪽에서 온 군대들은 사해지역을 휩쓸고 나서 귀국했던 것같다. 만약 평지의 성읍들이 오늘날의 사해지역에 걸쳐 있었다면 그들은 곧장 아브람이 거주하는 헤브론 쪽으로 쳐올라 왔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5성읍들이 그 지역 남쪽 꿑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우리의 결론이 정확함을 알 수 있다.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았는데,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도망칠 때에 거기에 빠졌으며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였더라.
학자들은 이 구절에 와서 아므라펠이 함무라비가 될 수 없다는 근거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근거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이들의 불신앙만 보여줄 뿐이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아브람은 318명의 종을 데리고 4왕을 추격했고 소돔과 고모라의 약탈물을 되찾았다. 또한 아브람은 함무라비의 상왕격인 엘람 왕을 쳐 이겼다. 이들 학자들에 따르면 318명의 군대로 대군대와 함무라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히브리어, 헬라어 혹은 70인역이나 탈굼 및 사마리아오경, 고고학적 근거, 기타 그 어떤 타당한 근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래야 그들의 불신뿐이다. 한 마디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훌륭하다고 정평이 난 학자들께서 창14:1에 정확한 주석을 제시할 수 없는 근거는 그들은 318명의 군대가 4왕들의 군대를 추격해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드온의 용사 300명이 135,000명을 쳐 부순 것도 믿지 않는다.(사7:7 삿8:10) 기드온은 오렙과 스엘 두 왕을 죽이기도 했다. 아브람은 기드온보다 700년 전 사람이고 따라서 당시 왕들의 군대 규모는 기드온 시대보다 휠씬 작았다. 아브람이 추격한 군대는 30일 이상이나 거인들과 싸운 후에 돌아가는 지쳐있는 군대였다.
삿7:7 물을 핥은 삼백 명으로 내가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인들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다른 백성은 다 각기 자기 처소로 가게 할지니라.
삿8:10 그때 세바와 살문나가 칼콜에 있었고 그들 군대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동방 자손들의 모든 군대 중 남은 자는 약 일만 오천이니 이는 칼을 뺀 십이만 명이 쓰러졌음이라.
11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그들의 모든 식량을 탈취해 가고
12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형제의 아들인 롯과 그의 재물도 빼앗아 갔더라.
침략군은 요단 강쪽을 향해 북쪽방향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그들은 엘람, 시라아 및 메소포타미아로 돌아가기 위해 다마스커스 무역로를 따라 귀환 중이었다. 10절에 나와있는 역청은 아직도 팔레스타인 땅에 남아 있다. 이 역청은 어떤 곳에서는 약 5m 깊이 정도까지 된다.
모세가 기록할 때 도망칠 때에 빠졌으며는 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언급한다. 이때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돔의 왕들은 아브람이 돌아올 때 그를 맞으러 나갔기 때문이다.(창14:17)
그 전쟁은 하나의 재앙이었다. 우리는 이 대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알지 못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4왕들이 패션소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지나가진 않았다는 것이다. 민14:42-45에 의하면 아브람 당시의 5왕들의 동맹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약30% 정도가 살상되었다고 보면 합당할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사자는 (미국의 경우) 참전자 중 약 10%가 못되었고 한 사람을 살상하는데 10만 달러가 들어간 셈이다. 월남전에서는 약 10%의 살상율과 한 명당 50만 달러가 소묘되었다.
민14:44-45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 멋대로 산 정상으로 올라갔으나 주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않았더라. 그때에 아말렉인들과 산지에 거하는 카나안인들이 내려와서 그들을 쳐서 패주시켜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북방에서 내려온 대군 중 남은 자들은 귀환했고 그 중5/6 가량을 약속의 땅에 남겨두어(겔39:2) 새들로 먹도록 하였다.(겔39:17-22) 아브람이 자기 동생의 아들을 되찾기 위해 그들을 추격했을 때에는 약 40,000명이 채 못되었을 것이공 그 중 10% 사망, 20% 중상 약 30,000명이었을 것이다.
아브람은 충분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지역을 잘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그리고 그가 공격했을 대에는 주려부대를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포로와 전리품을 끌고가는 후방부대를 쳤을 것이다.
겔39:2 내가 너를 돌이켜서 너의 여섯째 부분만(1/6)을 남기고 북방으로부터 너를 올라오게 하여 이스라엘의 산들 위로 너를 인도하리라.
겔39:17 너 인자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모든 깃달린 새와 들의 모든 짐승들에게 이르라.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베푸는 나의 제물, 즉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서 베푸는 큰 제물 사면에 모여서 너희는 살을 먹고 피를 마실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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