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도망쳤던 자가 와서 히브리인 아브람에게 말하였으니, 아브람은 아모리인 마므레의 평지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콜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들이더라.
14 아브람이 자기 형제가 사로잡혀 갔음을 듣고 자기 집에서 태어난 훈련받은 종 삼백십팔 명을 무장시켜 그들을 추격하여 단까지 가서
우리는 이미 마므레에 대해 언급한 바 있고 히브리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한 바가 있다.(창10:24) 우리는 아브람이 이끈 부대가 318명보다 더 많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므레, 에스콜, 아넬 등 아브람의 동맹자들의 가족과 종들을 합치면 총 부대수는 휠씬 더 많다. 아브람의 부대가 함무라비를 추격한 불명예를 벗거내고 싶은 학자들은 기드온이 300명으로 135,000명을 쳐부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318명이 휠씬 넘는 부대가 40,000명 정도를 부순 것은 불명예가 아닐 것이다.
창10:24 아르박삿은 살라를 낳고 살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단까지 가서”
아스트럭(Astruc), 벨하우젠(Wellhausen) 및 성경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사용하여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단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단이란 지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그 지파를 따라 이를 지었다.
단이 재판관기18:29까지는 라이쉬(Laish)라고 불리웠다. 그런데 이 때는 창세기 14장 사건이 발생한 후 700여 년이 지난 때였다. 그렇다면 피스가 산에서 죽은 모세가(신34장) 어떻게 해서 “단까지 가서”라는 말을 기록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삿18:29 그들이 그 성읍의 이름을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단이라 부르니라. 그러나 그 성읍의 이름이 처음에는 라이스였더라.
당시에는 단이란 성읍이 세워지지도 않았고 단 지판의 이름을 따서 불려지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상투적 표현에 나와있는 성읍이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단을 넘어 다마스커스까지 추격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두 가지의 답변이 가능하다. ㅇ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담과 이브, 노아 등의 역사를 계시하여 주신 것과 똑같이 단이란 이름을 계시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미국의 인디언들의 장막을 차지할 것을 누가 모세에게 알려주었겠는가?(창9:26-29) 모세는 유럽인들을 만난 적도 없고 인디안들을 만난 적도 없다.
창9:26-27 또 그가 말하기를 "셈의 주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야펫을 증대케 하시어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실 것이요,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신34:1에 다시 단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때는 기록자가 모세보다 더 나중까지 살아 남아야만 하므로(신34:5) 가장 합당한 해석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그 단어를 기록에 맞추어 쓰도록 말씀했을 것이다.
신34:1 모세가 모압 평지로부터 느보 산에 올라 여리코 맞은편 피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니 주께서 그에게 길르앗의 온 땅을 단까지 보여 주시고
신34:5 그러므로 주의 종 모세가 주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으니라.
아브람은 이스라엘과 그 12지파의 아버지이다. 이들은 라이쉬(Laish)를 단이라고 불렀다. 키럇아르바를 헤브론으로 바꾸어 이스라엘 명칭으로 만든 사실을 보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권리를 갖고 있었다.(신34:9 31:23 수1:5,9) 여호수아는 수1:8에서 모세오경의 사본을 갖고 있었으며 모세는 이 책들을 여호수아에게 되풀이해서 들려주었다.(출17:14) 만약 창세기나 신명기를 기록한 그 어떤 지가가 있었다면 그는 다름아닌 여호수아였을 것이다.
신34:9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였으니 이는 모세가 그에게 안수하였음이더라.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자손이 그에게 경청하고 행하였더라.
신31:23 또 주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하시니라.
수1:5 네 평생에 네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 내가 모세와 함께하였던 것과 같이 내가 너와도 함께하리니, 내가 너를 단념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수1:9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강건하고 담대하라. 무서워 말고 낙심치 말라. 이는 주 네 하나님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함이라.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그 안에 있는 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너의 길을 번성하게 만들 것이고 네가 좋은 성공을 이루리라.
출17:14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되풀이해서 들려 주라. 이는 내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의 기억을 완전히 없앨 것임이라." 하시니라.
15 그와 그의 종들을 나누어 밤에 그들을 치고 다마스커스 왼편에 있는 호바까지 추격하여
기도온이 했던 것과 똑같은 야습이었다.(삿7:9,19)
삿7:9 그 날 밤에 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군대에게로 내려가라. 이는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음이라.
삿7:19 그리하여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삼백 명이 중간 경점이 시작될 무렵 진영 외곽에 와서 그들의 파수를 새로이 세울 때 나팔을 불고 그들의 손에 있는 항아리를 깨뜨리니라.
위대한 법전수여자로서 거듭나지 않은 고고학자들과 어원학자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함무라비 대왕께서 비참하게 깨지고 계신다. 족장 아브람에게 이리저리 쫓기는 꼴이 비참하기 그지 없다. 함무라비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함무라비 치리시대를 기원전 2100까지 뒤로 잡는다. 그래서 훈련받은 아브람의 종 앞에서 비참하게 사로잡히는 장면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창14:17을 제외하고는 함무라비가 죽었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창14:17 아브람이 크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온 후,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인 사웨 골짜기에서 그를 맞이하러 나왔으며
16 모든 재물을 다시 찾아오고 자기 형제 롯과 그의 재물과 여자들과 백성들도 다시 찾아왔더라.
아브람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롯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롯은 오바댜처럼(왕상18:13) 영향력은 있었는지 모르나 엘리야 같은 능력은 없었다(왕상18:15)
왕상18:13 내가 한 일은 들어서 아시겠읍니다만, 전에 이세벨이 야훼의 예언자들을 학살했을 때, 야훼의 예언자 백 명을 오십 명씩 동굴에 숨기고 먹을 것과 물을 날라다 주어 살려 내었읍니다.
왕상18:15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야훼께서 살아 계심을두고 맹세하오. 내가 기필코 오늘 왕을 만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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