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악장을 따라 부른 다윗의 시
이 시편은 주로 경건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중요한 사항들이 4,5,7,11,16,18,19절에서 발견된다. 성령님께서 모든 성경을 기록하신 첫째 목적은 그것이 교리에 유익하게 하려는 것임을 기억하라.(딤후3:16)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1 하나님이여, 주의 자애하심을 따라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만일 자비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어째서 그것을 구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자유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같은 그런 분이시라면 어째서 이미 되어 있는 것을 위해 간구하는 것인가? 진화론자들이 말하듯이 사람이 진보되는 것이라면 누가 자비를 필요로 하겠는가?
주의 온유한 자비들의 풍성함을 따라 내 죄과들을 완전히 지우소서.
분명히 허다한 죄인들이 있고 그들 모두는 허다한 죄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거기에는 풍성한 자비가 있어야만 한다.
* 사람은 누구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도 자비가 필요로 한다.
* 사람은 누구나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도 자비를 필요로 한다
* 자비를 받기 위해 구해야 한다.
* 종종 죄인이 구하지 않았는데 자비를 받기도 한다.
* 온유한 자비들을 구해야 한다. tender mercies 자비란 단지 당연히 받아야 할 심판을 임시로 피하에 하는 것이므로 자비 그 자체만으로는 부정적이다.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다윗의 간구는 훌륭한 가문, 과거의 순수함, 공적인 지위나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비록 다윗이 이 네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 그분의 본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2 나의 죄악으로부터 나를 철저히 씻으시고, 나의 죄로부터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
3 내가 내 죄과들을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다윗의 범죄에는 3 가지 명칭이 붙어 있다. 죄과들, 죄악, 죄.
좌과(transgression)란 말은 반역을 의미하며 정확히 이전에 묘사된 것과 같다.(시50:17)
죄악(iniquity)이라는 말은 누군가의 비뚤어진 태도로서 이것도 정확히 이전 시편에 묘사된 것과 같다.(시50:19)
죄(sin)란 말은 잘못이나 올바른 길에서 떠나 방황하는 것을 뜻하는 일반적인 말로서 이 또한 정확히 이전 시편에 묘사된 것과 같다.(시50:18)
시50:17 네가 교훈을 싫어하고 내 말을 네 뒤에 던지는도다.
시50: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는 속임수를 발하는도다.
시50:18 네가 도둑을 보면 그와 동조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한 패가 되며
여기에 나와있는 것은 소위 주기도문의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우리의 빚진 것도....”(마6:9)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본질상 개인적인 고백임을 눈여겨 보라. 내 죄과들(1절) 나의 죄악(2절) 나의 죄(2절) 내가 죄를 지었으며(4절)이다.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옵시고
용서는 씻는 것이고(목욕기구)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목욕통) 닦아내는 것이다.(수건)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죄가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을 주목하라.(3절) 죄과들을 일으키는 것이 죄다.(약1:15)
약1:15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다윗은 그의 생각이나 양심에서 죄를 벗어버리지 못하는데 그것은 구약의 희생제들로는 양심을 정결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10:2)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자기의 죄를 판단하고 자백하기까지는 교제에 있어서 쉼이나 평안을 갖지 못한다. 바울의 양심은 그가 구원받았을 때 끝나지 않았으며(행23:1) 오히려 성령님에 의해 강화되어 이전보다 다욱 강해졌다.(롬9:1)
히10:2 그랬더라면 그들이 제물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이는 경배드리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되면 죄들에 대한 의식이 더이상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
행23:1 그때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며 말하기를 형제 여러분, 나는 이 날까지하나님 앞에 온전히 선한 양심으로 행하여 왔노라고 하자
롬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니, 나의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를 증거함이라.
다윗은 이 죄들에 대한 형벌로부터 구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들로 더럽혀진 것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7절-9절)
지옥에서 사람의 죄들은 영원히 그의 앞에 있게 된다. 모세는 “주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주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으니”(시90:8)라고 한다.(롬2:16)
롬2:16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있으리라.
4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리이다.
4절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사실은 둘째 계명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을 어기는 것은 모두 사실 첫째 계명을 어기는 데서 기인한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결코 이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했다. 레슬리 웨더헤드, 노만 빈센트 필, 척 스윈돌, 딘 루터 웨이글, 존 맥아더, 로버트 슐러, 마이클 킹 주니어도 역시 깨닫지 못한 채, 그것을 가지고 엄청난 시간을 보냈다.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모든 불완전함은 완전하신 분을 거역하는 것이다. 모둔 불순함은 순수하신 분을 거역하는 것이다. 모둔 무지는 온전히 지혜로우신 분을 거역하는 것이다. 모둔 범죄는 죄없는 분을 거역하는 것이다. 모든 죄는 거룩하신 분을 거역하는 것이다.
탕자는 본능적으로 이것을 알고 있다.(눅15:21)
눅15:21 그때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거역하여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나는 더이상 아들이라고 할 만한 자격이 없나이다.'라고 하더라.
주의 목전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죄들을 살펴보고 주목하시므로(시139편) 비난받으실 때(롬3:4 계20:11-14) 증거를 법정에 내놓을 수 있다.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
계20:11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
계20: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계20:13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계20:14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전12:14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취함으로 우리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고(삼하11:3-4) 요압에게 거짓말하도록 권함으로 요압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고(삼하11:18-21) 밧세바의 남편을 죽임으로써 밧세바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다.(삼하11:15)
삼하11:3-4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 보게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 힛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한지라 다윗이 사자들을 보내서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하여 그녀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이 그녀와 동침하더라. 이는 그녀가 그녀의 불결함을 정결케 하였음이더라. 그리고 그녀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11:18-21 요압이 다윗에게 보내어 전쟁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하였는데 그 사자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네가 왕에게 전쟁에 관한 일을 고하기를 마쳤을 때 만일 왕이 화를 내시며 네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너희가 싸울 때에 성읍에 그처럼 가까이 접근하였더냐? 너희는 그들이 성벽에서 너희를 쏠 줄 몰랐더냐? 누가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 죽였느냐? 한 여인이 성벽에서 그에게 멧돌짝을 던져서 그가 테베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성벽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너는 말하기를 '힛인 우리야도 죽었나이다.' 하라." 하더라.
삼하11:15 다윗이 그 편지에 써서 말하기를 "너희는 우리야를 가장 치열한 전쟁의 최전선에 배치하고 너희만 물러나와, 그로 공격을 당하여 죽게 하라." 하였더라.
또 다윗은 통치자의 부패한 본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다.(삼하12:14) 그러나 그는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라고 말한다.
삼하12:14 그러나 이 행실로 인하여 왕이 주의 원수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할 큰 구실을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요셉은 다윗이 태어난 때보다 500년도 더 이전에 이것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주목하라.(창39:9) 그 누구보다도 다윗은 사람에 대하여 자기에게 죄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데, 그가 살인혐의로부터 구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14절)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제하셨지만(삼하12:13) 그는 여전히 그 죄의 대가를 지불한다.(삼하12:18 13:28 18:14)
창39:9 이 집에 나보다 더 큰 사람은 없으며 당신 말고는 나에게 아무것도 금한 것이 없으니 이는 당신이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데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시51:14 오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주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 혀가 주의 의를 소리 높여 노래하리이다.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노라." 하더라.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주께서도 왕의 죄를 제하셨으니,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삼하12:18 일곱째 날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그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보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왕께 고하여도 왕께서 우리 말에 경청하기를 원치 아니하셨는데, 하물며 그 아이가 죽었다고 우리가 말하면 왕께서 얼마나 상심하시겠느냐?" 함이더라.
삼하13:28 이제 압살롬이 그의 종들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포도주로 즐거워할 때를 주목했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지 아니하였느냐? 담대하고 용기를 내라." 하더라.
삼하18:14 요압이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이렇게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아직 상수리나무 중간에 살아 있는 압살롬의 가슴에 던지더라.
이 구절은 모든 인본주의자들을 영원히 고발하는 무시무시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잘못과 죄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된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는 아무도 진정으로 자기동료 인간ㅇ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땅에 사는 동료인간을 거역한 그 어떤 죄든지 항상 알리바이를 댈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여러분보다 더 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이 지면 위의 모든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온갖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필생의 사업에 있어서 물밑의 구멍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 침몰해버린다.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롬3:4의 운명적인 출처가 4절에 들어있음을 눈여겨 보라.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
시51:4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리이다.
이것으로 인해 바울 시대의 대적들은 바울의 악을 행하여 선이 이루어지게 하자고 가르친다고 말했다.(롬3:7-8) 그러나 양쪽 구절 모두에 담긴 의미는 잘못을 행하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행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드높이게 되리라는 것이다.
다윗이 말하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데서 악을 행했으므로 심판 때 그런 일을 행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혹의 여지가 없게 되리라는 것이다. 기묘하게도 이 위대한 진리를 다루는 문맥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들에 관한 문맥이다. 롬3:4에서 말씀을 주목하라.
5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태어났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마음에 있는 진실을 원하시오니, 주께서는 감추어진 곳에서 나로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쟝 자크 루소(1712)는 가르치기를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그가 처한 환경에 의해 부패했다고 했다. 이로부터 지구환경의 날과 환경 생태학이 나온다. 즉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이유로 간선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매년 이만 명의 사람을 죽이면서 아기 고래들과 독수리들은 구하고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은 또한 죽이자는 것이다.
미국에서 호레이스 부쉬넬은 이 훌륭한 몽상을 성경말씀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창작해냈다. 발터 라우센부쉬는 이것을 하나님 나라 사상에 적용해서 현대의 전미 기독교협의회를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사회조직을 파괴하여 왕국을 오게 하려는 단일세계 소비에트 카톨릭 체계일 뿐이다.
인간은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싸웠던 두 아기를 알고 있고(창25:22) 태어나기 전에 상대방을 제치고 앞서려고 한 두 명의 아기를 더 알고 있다.(창38:28-29)
창25:22 아이들이 그녀 안에서 서로 싸우니 그녀가 말하기를 "이와 같으면 내가 어찌하여야 할까?" 하고 주께 물으러 갔더라.
창39:28-29 그녀가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니 산파가 주홍색 실을 가져다 그의 손에 묶어 주며 말하기를 "이 아이가 먼저 나왔다." 하고 그가 그의 손을 도로 들이니, 보라, 그의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갑자기 튀어나오느냐? 갑자기 나옴이 너에게 있으라." 하고 그의 이름을 파레스라 불렀으며
5절은 사람의 본질에 대한 묘사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창녀라든지 간음하는 여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여인이 불결하며(욥25:4) 그렇기에 그들이 낳은 것도 불결하다는(욥14:4) 것이다.
욥25:4 그렇다면 어찌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의롭게 될 수 있겠으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어찌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
욥14:4 누가 더러운 것 가운데서 깨끗한 것을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
모든 선전활동의 반대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조성되지 않는다. 사람은 잘못 시작하고 잘못 형성되고 잘못 성장하므로(창8:2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새로운 시작이 요구되는데(요3:3-5) 이 새로운 시작은 주를 두려워하는 것(잠1:7)과 더불어 내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6절)
창8:21 주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 주께서 그 마음 속으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다시는 내가 행한 것과 같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지 아니하리라.
요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니라. 니코데모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잠1:7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가 올바르다면 외부는 자연히 처리될 것이지만 내부를 영원히 수선하는 일은 사도행전 2장까지는 일어날 수 없었다. 구약에는 새로운 출생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은 3가지 시제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다.
과거 “나를 씻으시고”(2절)
현재 “나를 정결케 하소서”(7절)
미래 “나를 구해 주소서”(14절)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깨끗케 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
8 나로 기쁨과 즐거움을 듣게 하소서. 주께서 꺾으신 뼈들이 즐거워하나이다.
9 나의 죄들로부터 주의 얼굴을 가리소서. 나의 모든 죄악들을 도말하소서.
10 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7절과 15절 사이에는 실제로 12개의 청원이 나와 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면 행복해질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 처하게 될 수 있다.(8절)
그가 하는 말의 많은 부분이 비유적임을 알 수 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이것은 문둥병으로부터 정결케 되는 것에 대한 언급인데(레14:4-6) 문둥병은 성경에서 죄에 대한 가장 중요한 모형의 하나다.
레14:4-6 제사장은 명하여 그를 깨끗케 하기 위하여 살아 있는 깨끗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주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또 제사장은 명하여 그 새 중 한 마리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여 그가 살아 있는 새를 취하여 백향목과 주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살아 있는 새를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에다 적시어
성경에 나오는 우슬초에 가장 가까운 식물은 밝은 녹색의 덩굴식물인 카파리스 스피노자이다. 민19:18은 이같이 정결케 하는 것을 정결케 하는 물과 연관시킨다.(히9:19-21)
민19:18 깨끗한 사람이 우슬초를 집어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모든 그릇과 거기 있었던 사람들과, 뼈나 살해된 자나 죽은 자나 무덤을 만진 자 위에 뿌리되
히9:19-21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물과 주홍색 양털과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며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였느니라. 더 나아가 그는 피를 가지고 성막과 섬기는 데에 쓰이는 모든 기명들에 뿌렸느니라.
“나를 정결케 하소서...나를 씻겨소서”
내부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외부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겔36:35) 기도는 깨끗한 마음과(잠6:25) 바른 영(10절)을 위한 것이다. 10절에 있는 이 말은 성령님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12절에 나오는 자원하는(free) 영을 언급한다.
겔36:35 그러면 그들이 말하기를 "황폐했던 이 땅이 에덴의 동산같이 되었도다. 삭막하고 황폐하고 파괴된 성읍들이 성벽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살고 있도다." 하리라.
잠6:25 그녀의 아름다움을 좇아 네 마음에 정욕을 품지 말며, 그녀가 자기 눈꺼풀로 너를 붙잡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고전2:11과 잠20:27에 나오는 사람의 영으로서 하나님께서 놓아주어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롭게(free) 된 영이다.
고전2:11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
잠20:27 사람의 영은 주의 촛불이라. 뱃속에 있는 모든 깊은 부분을 살피느니라.
11 주의 임재로부터 나를 내어쫓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주의 자원하는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법자들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리이다.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은 이 구절을 히6:1-6으로 몰고가서는 비록 다윗이 그 영을 슬프게 했지만 아직 배교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께서 자비로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다윗도 사울처럼 배교했을 것이라고 한다.
히6:1-6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의 기초를 떠나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리니, 죽은 행실들에서 회개함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침례들과 안수함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실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
이것은 그 구절의 교리적 진리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는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히6:1-6은 모든 알미니안주의자들이 바로 그 주장을 증명하려고 사용하는 신약구절이다. 성공회 신자인 모티어는 대담하게 발을 내딛으면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불리 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RSV와 NRSV의 갈5:4에서 이것을 응용하고 있음을 보라.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후에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엄청나게 부패한 NIV와 NASV도 남들이 하는 대로 여러분을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타국인으로 만들었다. 벌링거는 그 차이를 감지하고 다윗의 기도가 신약 성도에게는 타당하지 않다고 소견을 말한다. 그렇다. 분명히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말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갈5:4 율법으로 의롭게 된 너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무용하게 되고 은혜로부터는 떨어져 나갔느니라.
스코필드는 성령께서 다윗 안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성령님은 그 안에 계셨다.(사63:11 창41:38 출31:3)
사63:11 그때에 주께서 옛적의 날들과 모세와 그의 백성들을 기억하여 말씀하기를 "자기 양무리의 목자와 더불어 그들을 바다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이가 어디 계시뇨? 그 안에 그의 거룩한 영을 두신 이가 어디 계시뇨?
창41:38 파라오가 그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으리요?" 하며
출31:3 내가 그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여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여러 가지 기술로써
커티스 헛슨, 존 R. 라이스, 밥 존스3세 등은 모두 구약성도가 십자가를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고 가장한다. 그러나 구약성도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겔18:24)
겔18:24 그러나 의인이 돌이켜 자기 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여 악인이 행한 모든 가증함대로 행하면 그가 살겠느냐? 그가 행한 그의 모든 의는 언급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범한 그의 허물과 그가 지은 그의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다윗은 성령을 잃어버릴 수 있었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삼하12:13) 그는 성령님을 잃어버리는 것이 마땅했으며(11절)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울도 그랬는데 그는 그때 성령을 영원히 잃어버렸다.(삼상16:14)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노라." 하더라.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주께서도 왕의 죄를 제하셨으니,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삼상16:14 주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주로부터 온 악령이 그를 괴롭히더라.
삼손은 일시적으로 그랬다.(삿16:20) 율법 하에서 의로운 구약 성도였더라도 더렵혀졌을 때에는 그의 죄 가운데서 죽었다.(겔18:24) 구약 율법 하에서, 환란 때의 믿음과 행위체제 하에서, 그리고 천년왕국에서 구원받은 죄인은 구원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그 일을 경고하는 구절들이 백 구절도 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사16:20 그녀가 말하기를 "삼손이여, 필리스티아인들이 당신에게 닥쳤도다." 하니 그가 잠에서 깨어나 말하기를 "내가 이전처럼 나가서 몸을 흔들어 버리리라." 하더라. 그는 주께서 자기에게서 떠나신 줄을 알지 못하더라.
물론 신약성도들을 위해 영적인 적용을 할 수 있다. 사람이 기쁨을 갖게 되기까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지 못한다.(13절) 그것은 주를 기뻐함이 그의 힘이기 때문이다.(느8:10)
느8:10 그때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라. 그러나 아무것도 준비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그들의 몫을 보내라. 이는 오늘이 우리 주께 거룩한 날임이니, 너희는 슬퍼하지 말라. 이는 주를 기뻐함이 너희의 힘이기 때문이라." 하였더라.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구원 그 자체가 아니라 회복된 구원의 기쁨이다. 또 그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다.(12절)
경건에 관해 또 다른 영적 적용을 한다면 깨끗한 마음은 진화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고 창조의 행위가 필수적이다.(10절) 솔로몬은 지혜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10절도 기도했어야 했다.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롬12:2)은 사람의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이지만(롬7:25) 그 창조행위는 성령님이 하신다.
롬7:25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다윗은 사울(삼하7:15)과 예레미야(렘43:4-7)처럼 하나님의 면전에서 내어쫓기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붙잡혀간 후에도 주님과 함께 있었지만(렘43:8) 예루살렘성전으로부터는 격리되었다.
삼하7:15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로부터 나의 자비를 빼앗은 것과 같이, 그것이 그에게서 떠나지는 아니하리니
렘43:7 그러므로 그들이 이집트 땅으로 들어갔으니 이는 그들이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리하여 그들은 타판헤스까지 갔더라.
렘43:8 그때 타판헤스에서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다윗은 삼하15:29-30에서 이것을 일시적으로 경험한다. 우리의 경우에 “자원하는 영”은 종의 영이 아닌 “양자되는 영”이다.(롬8:15)
삼하15:29-30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옮겨가 거기서 머무르더라. 한편 다윗은 올리브 산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올라갈 때 울면서 그의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가니,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각자 자기 머리를 가리고 올라갈 때 울면서 올라가니라.
롬8:15 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 되는 영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다윗은 범죄자로서 하나님의 길(13절)을 배워야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119:67,71에 있는 그의 고백을 보라. 다윗은 약5:20에 나오는 죄인처럼 자신의 잘못된 길에서 돌아셨다. 환란 때의 구원과 구약시대 모세율법 아헤서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동일하지 않다. 그것들이 동일하다고 백만명의 구원받은 학자들이 말한다 해도 그것은 그들이 일렬로 서서 백만 번 거짓말을 하는 것을 뿐이다.
시119:67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헤맸으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내가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 좋사오니, 이는 내가 주의 규례들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니이다.
약5:20 그 죄인을 자신의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그 사람은 한 사람의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게 될 것이며, 수많은 죄들을 덮게 되리라는 것을 그로 하여금 알게 하라.
14 오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주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 혀가 주의 의를 소리 높여 노래하리이다.
15 오 주여, 주께서는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면 내 입이 주를 찬양함을 보이리이다.
16 주께서는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렇지 아니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희생제들은 상한 영이니,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우리야의 피가 자기 손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의를 노래할 수 없었다.(14절) 그의 입은 닫혀졌다.(15절) 깨끗하지 못한 마음(10절)과 잘못된 영(10절)과 죄의식을(3절) 가지고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은사주의자들은 그런 일을 하지만(히키, 고어만, 코플랜드, 에윙, 코우, 엘런, 로버츠, 베커, 스웨거트, 캅스 등) 성령님을 정말로 아는 사람에게 그런 식의 찬양은 소리내는 놋이나 시끄러운 꽹과리(고전13:1)일 뿐이다.
고전13:1 내가 사람들과 천사들의 방언들로 말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내는 놋이나 시끄러운 꽹과리가 되고
설교자가 하나님께서 열어주는 기회의 문을(고전16:9) 사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입의 문을 열어주셔야 한다.
고전16:9 이는 내게 크고도 효과적인 문이 열렸으며, 또 대적하는 자들도 많기 때문이라.
우리는 경건에 관한 적용으로서 구약시대일지라도 다음 사항들을 먼저 주의했을 때에야 하나님께서 문자적인 희생제들도 기뻐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음(6절, 10절) *영(10절)
모든 주석가들은 그 진리를 파악할 만큼은 성숙하다. 그것은 아기들을 위한 젖 수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음식(히5:14)은 그들이 포착하지 못한다. 단단한 음식은 다음의 위대한 진리와 연관이 있다. 곧 율법하에서 살인과 간음은 그 어떤 유대인에게 있던 그 어떤 어린양의 피로도 속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무엇인가를 내다보든지 돌아보든지 간에 말이다. 율법 하에서 이 두 가지 죄는 모두 용서될 수 없는 죄였고 그런 죄를 범한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아 자기 죄를 가운데서 죽어야 했다.(겔18:24)
히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 말씀을 사용함으로 감각들을 단련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이라.
겔18:24 그러나 의인이 돌이켜 자기 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여 악인이 행한 모든 가증함대로 행하면 그가 살겠느냐? 그가 행한 그의 모든 의는 언급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범한 그의 허물과 그가 지은 그의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모세가 사형을 면했고(출2:12) 다윗이 사형을 면했다는(삼하12:7) 사실로 인해 주석가들은 율법 하에 있던 유대인 죄인들이 모두 그것을 면할 수 있었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출2:12 그가 이쪽저쪽을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죽여서 모래 속에 감추니라.
삼하12:7 그러자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그 사람이니이다.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기름 붓고 사울의 손에서 구해 내어
모세는 레24:17과 민35:16에 있는 명령들을 받기 이전에 살인을 했다. 만일 다윗이 구약시대의 다른 사람 그 누구에게도 약속된 적이 없는 특별한 자비들을 받지 않았더라면(사56:3 행13:34) 그도 즉석에서 요압처럼(왕상2:28-33) 자기 죄들 가운데 죽었을 것이다. 그 명령은 그를 나의 제단에서 끌어내라(출21:14)였다.
레24:17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죽일지니라.
민35:16 만일 누가 철로 된 기구로 사람을 쳐서 그가 죽으면 그는 살인자이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사55:3 너희 귀를 기울이고 내게 와서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혼이 살리라. 또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베푼 확실한 자비니라.
행13:34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사 다시는 썩어질 것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윗의 확실한 자비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왕상2:28-33 그때 요압에게 소식이 이르렀으니 요압이 압살롬을 좇지는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더라. 요압이 주의 성막으로 도망하여 제단의 뿔들을 붙잡았더라. 누군가가 솔로몬왕에게 요압이 주의 성막으로 도망하였다는 것을 고하여 "보소서, 그가 제단 곁에 있나이다." 하자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말하기를 "가서 그를 치라." 하니라. 브나야가 주의 성막에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왕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으니, 나오라." 하니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하더라. 브나야가 다시 왕에게 그 말을 전달하여 말하기를 "요압이 이같이 말하였고, 그가 이같이 내게 대답하였나이다." 하자 왕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가 말한 대로 행하여 그를 쳐서 묻으라. 그리하여 너는 요압이 흘린 무죄한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없애라. 주께서 그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리시리라. 그가 자기보다 더 의롭고 더 선한 두 사람을 쳐서 그들을 칼로 죽였으니, 곧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의 군대 대장 예델의 아들 아마사라. 내 아버지 다윗은 그 일을 알지 못하셨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피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후손의 머리로 영원히 돌아갈 것이나 다윗과, 그의 씨와, 그의 집과, 그의 보좌에는 주께로부터 화평이 영원히 있으리라." 하더라.
출21:14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이웃에게 고의적으로 가서 간계로 그를 살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나의 제단에서 끌어내어 죽일지니라.
그 두 가지 죄에 대해서는 그 어떤 희생제나 번제도 명령하고 있지 않으며, 이것은 16절에 있는 다윗의 기도를 설명해 준다. 다윗의 죄는 이 시대에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거부되는 것과 같다.(암9:11)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한 사람에 대해 그 어떤 희생제나 번제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주목하라.(레24:16)
암9:11 그 날에 내가 무너진 다윗의 성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리라. 또 내가 그의 패망을 일으켜 옛날처럼 세우리니
레24:16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모든 회중이 분명히 그를 돌로 칠지니라. 타국인도 그가 주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 땅에서 난 자와 마찬가지로 죽일지니라.
이것은 신약시대의 구원이 아니며 그 모형도 아니다. 주의 이름을 모독한 사람이 십자가를 내다보고 있었을지라도 어쨌든 그는 총알처럼 곧바로 지옥으로 갔으며 불못에서 결말을 맺게된다.
모세와 다윗이 살인죄와 간음죄를 짓고도 자기 죄 가운데서 죽지 않은 것은 그들이 제사를 드려서 용서받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모세도 다윗도 살인죄와 간음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모세와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에서 용서받은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 자비를 평소에 동행하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와 다윗은 하나님 앞에 상한 마음과 영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바라며 나아갔다. 살인죄와 간음죄를 지었을 지라도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용서하실 것을 믿고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갔다. 그래서 용서받았다.
18 주의 선하신 기쁨으로 시온을 향하여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벽들을 쌓으소서.
행15:16에 나오는 것처럼 재림에 대해 언급한다.
행15:16 이 일 후에 내가 다시 돌아와서 쓰러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것이며, 또 거기에 파괴된 것들을 다시 세워 일으키리라.
19 그때 주께서는 의의 희생제들과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때 그들이 주의 제단에 수송아지들을 드리리이다.
겔41장-46장에 나오는 것처럼 천년왕국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제들을 언급한다. 18절과 19절은 재림에 관한 것이다. 천년왕국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제는 속죄를 위한 것은 아니며 예수님의 속죄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스펄전은 천년왕국 성전에서 드리는 문자적인 희생제를 신약시대에 드리는 영적인 제사들로 바꾸어버린다. 제미에슨, 포셋, 브라운은 18절과 19절이 B.C.900년 이전에 솔로몬에게서 성취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역사적 침례교의 입장은 재림 이후에는 예루살렘에서 어떤 종류든지 문자적인 희생제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것이다.
'강 해 > 시편 2권(42-7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53편 1절 - 6절 (1) | 2025.01.15 |
---|---|
시52편 1절 - 9절 (1) | 2025.01.15 |
시50편 1절 - 23절 (1) | 2025.01.14 |
시49편 1절 - 20절 (0) | 2025.01.14 |
시48편 1절 - 14절 (0) | 2025.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