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 주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이 시편은 보통 참회의 시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누군가가 자기 죄들을 회계하고 그 죄들로 인해 후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참회의 시편들로는 32, 38, 102, 130, 143편이 있다.
스미닛은 ‘여덟 번째’를 의미하며, 할례를 받는 여덟 째 날, 또는 여덟 번째 음조를 위한 악기와 관련이 있다. 더멜로우는 그것이 낮은 옥타브에 대한 언급이라고 한다.
1절은 하나님의 책망(계3:19)이 그분의 사랑과 관심, 혹은 그분의 진노의 표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징계라는 용어는 책망보다는 더 강한 의미이고,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이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히12:5-9) 위험한 일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절망적이라고 해서 낙심하는 것(하나님을 버리는 것), 또는 그분의 채찍질을 경시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이다. 두 반응 모두 크게 실패한 것이다. 렘10:24와 애3:22-39는 이 시에 대한 훌륭한 참조 구절이다.
계3:19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히12:5-9 또 마치 자식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으니, 곧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매질하시느니라."고 하신 것이라. 너희가 징계를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아들들로 대우하실 것이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징계를 너희가 받지 않는다면 너희는 사생아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영들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렘10:24 오 주여, 나를 징계하시되 공의로 하시고 주의 진노로 하지 마시어 나로 아무것도 되지 않게 마옵소서.
2 오 주여, 내가 연약하오니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 주여, 내 뼈가 고통스러우니 나를 고치소서.
2절에 있는 다윗의 기도는 응답되었다.(렘30:17) 이 기도는 많은 경우에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 적합하다.
렘30:17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고 내가 너를 네 상처들에서 치유시켜 주리니, 이는 그들이 너를 '쫓겨난 자'라고 부르며, 말하기를 "이것이 아무도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하였기 때문이라.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죄의 용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죄들을 자백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자비는 갈보리에서 완성되었지만, 우리가 자비를 얻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히4:16)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이는 우리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
자비와 깨끗하게 하심과 용서를 위해 시시때때로 간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 있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자비와 깨끗하게 하심과 용서를 적어도 하루에 세 번 이상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알 수 없게 된다.
3 나의 혼도 심히 고통스러우니, 오 주여, 언제까지니이까?
언제까지니이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저를 낫게 해 주시겠습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청구서를 지불할 돈을 주시겠나이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이 고통에서 놓아주시겠나이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돌아오셔서 이 혼란에서 건져내 주시겠나이까? 하나님에 관한 것 중 가장 지루한 것은 그분은 결코 서두르시지 않는다는 것이다.(벧후3:1-10)
벧후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이라.
4 오 주여, 돌아오셔서 나의 혼을 구해 주소서. 오, 주의 자비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오 주여 돌아오셔서’는 교리적으로 재림을 위한 기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보이셔서 다윗의 생명을 구해주라는 기도이다. ‘나의 혼을 구해 주소서.’는 창19:20과 겔18:27처럼, 살아서 목숨을 유지하게 해 달라는 간구이다. 영적으로 적용하자면 고통으로부터 타락하는 것으로부터 낙심하는 것으로부터, 사망으로부터 나의 혼을 구해달라는 것이다.
창19:20 보소서, 이제 이 성읍은 도주하기 가깝고 작은 성읍이니, 오, 나로 그곳에 도피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그러면 내 혼이 살리이다." 하니
겔18:27 또 악인이 돌이켜 그가 범한 악에서 떠나 합법적이고 옳은 것을 행할 때 그는 자기 혼을 구원하리라.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누가 주께 감사드리겠나이까?
6 내가 신음으로 곤비하여 밤마다 내 침상을 띄우며, 눈물로 내 자리를 적시나이다.
5절은 전9:5와 더불어 여호와의 증인들이 혼의 소멸을 주장하기에 이상적인 본문이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그러나 ‘기억하다’, ‘알다’라는 말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의미가 아니다. 삿8:34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고, 호8:4에서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왕들과 고관들을 모르신다고 했으며, 마7:23은 그리스도께서 악인들을 모르신다고 했다.
전9:5 살아 있는 자들은 그들이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은 더 이상 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에 대한 기억이 잊혀짐이라.
삿8:34 이스라엘 자손이 사면에 있는 그들의 모든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구해 주신 주 그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마7:23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리라.
갈4:9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께서는 또한 백성들을 아신다고 말씀하셨다. 즉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아시며 아무것도 잊어버리시지 않지만(대상28:9) 실제로 그분은 때때로 어떤 것들에 대해 호의를 갖거나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그것들을 알지 않으시며 기억하지 않는다.(창8:1 30:22)
갈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알려졌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다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종노릇하기를 원하느냐?
대상28:9 너,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라. 그리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그 분을 섬기라. 주께서는 모든 마음을 살피시고 생각의 모든 상상을 아시나니, 만일 네가 그 분을 찾으면 그가 너를 만나실 것이나, 만일 네가 그 분을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창8:1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과 모든 가축들을 기억하사, 하나님께서 땅 위에 바람을 지나가게 하시니 물이 줄어들더라.
창30:22 하나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들으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니
본문에서 다윗이 음부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히 바로 다음에 오는 말의 의미로 하는 말이다. “누가 주께 감사드리겠나이까?” 이와 관련해서 시88:10과 114:17을 공부하라.
시88: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이적들을 보이시겠나이까? 죽은 자가 일어나서 주를 찬양하겠나이까? 셀라.
시115:17 죽은 자는 주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침묵으로 내려가는 어떤 자도 못하느니라.
음부(the grave)는 죽은 자들의 집단적인 상태를 언급하는 것이지, 단순하게 흙구덩이 매장지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삼상2:6 시49:15 등) 물론 이 말은 때때로 단순하게 무덤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마27:52) 이 음주를 맛소라 원문의 판본들에서는 지하세계라고 부른다.
삼상2:6 주께서는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로 끌어 내리기도 하시며, 끌어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시49:15 그러나 하나님은 내 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니, 그가 나를 받아 주시리라. 셀라.
마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
7 내 눈은 슬픔으로 인하여 쇠하여졌으며, 내 모든 원수들로 인하여 쇠잔해졌나이다.
7절의 표현은 비유적인 것으로 많은 성도들이 경험한 소위 슬픔의 밤의 모습이다. 어떤 러시아인 순교자는 지하실에 간금되었는데, 그의 양쪽 발이 감옥 바깥쪽에서 자물쇠에 채워졌고 밤새도록 쥐들이 그의 발을 갉았다. 그는 이 일이 있은 지 닷새 후에 죽었다. 어떤 프랑스인 순교자는 큰 원통 속에 던져졌는데 그곳은 죽은, 또 죽어가는 성도들로 가득 메워졌다. 뚜껑은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 수난자들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 또 상처와 감염과 탈진과 부러진 뼈와 열병과 굶주림, 이 모든 것 속에서 죽었다. 깨어진 가정들에는 온 밤을 눈물 흘리며 보내는, 마음이 무너져버린 이들이 있다. 한때 욥은 자신의 얼굴이 울음으로 더럽혀졌다고 했다.(욥16:16)
욥16:16 내 얼굴은 울음으로 더럽혀졌으며 내 눈꺼풀 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있으니
본문에서 쇠하여졌으며(consumed)라는 말은 보다시피 소멸되어 없어진 것을 뜻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멸망하다(perish)라는 말이나 멸망(destruction)이라는 말도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을 뜻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시92:9 욥30:24)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들은 멸망이란 곧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7절을 5절과 연결시켜서 음부에서는 다 소멸되어 버린다고 생각한다.
시92:9 오 주여, 주의 원수들을 보소서. 보소서, 주의 원수들이 멸망할 것이며, 모든 행악자들이 다 흩어지리이다.
욥30:24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멸망 속에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분은 그의 손을 무덤에까지 뻗치지 아니하시리라.
8 죄악을 행하는 너희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라. 주께서 나의 우는 소리를 들으셨도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또 곤경에 처한 것으로 인해 세상적인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해야 할 말이다. 그들은 그 곤경을 멸망의 증표(빌1:28)로 여길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들에게 주께서 나의 우는 소리를 들으셨으니 내게서 떠나라고 말해야 한다.
빌1:28 반대하는 자들로 인하여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나니 이것이 그들에게는 정녕 멸망의 표이며, 너희에게는 구원의 표이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
9 주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으니 주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고 몹시 고통스럽게 하소서. 그들로 갑자기 부끄러움을 당하여 돌아서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1-3절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간구로 시작하는 한 기도에서 이 사람은 믿음으로 내 기도를 받을 것이라고 미래에까지 손을 뻗쳐, 그것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주목하라.(내 간구를 들으셨으니)
간구(supplication)는 어떤 것을 공급(supply)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내 모든 원수들로 돌아서게 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으로 돌아서야 하며 또는 그들이 이전에 추고하던 것과 이전의 동료들에게로 돌아서야 한다. 그렇지만, 다윗의 원수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주께서 돌아오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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