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장에는 현시대 사람들이 해석상 난제로 여기는 어려운 기사가 나옵니다.
1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 딸들이 태어나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보되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자기를 위해 아내로 삼으니라.
3 주께서 이르시되,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 이는 그도 육체이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그의 날들은 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 들에게로 들어와 그들이 저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에도 있었는데 바로 이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
이 사건은 결국 노아의 대홍수로 이어졌고 노아의 가족 8명을 제외하고는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모두 멸절되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마음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그가 마음으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계속 악할 뿐임을 보시고는
6 주께서 땅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며
7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멸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을 만든 것으로 인해 슬퍼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당시 땅의 상태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11 땅도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여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찼으므로
12 하나님께서 땅을 보시니, 보라, 그것이 부패하였더라. 이는 땅위에서 모든 육체가 자기 길을 부패시켰기 때문이라.
아무런 편견 없이 창세기 6-7장을 읽으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존재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취하였고 그 결과 하이브리드 거인 종족들이 땅에 생겨났으며 또한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부패하여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콧구멍에 호흡이 있는 모든 존재들을 멸하고 홍수 뒤에 새롭게 다시 세상을 시작하셨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21 땅위에서 움직이던 모든 육체가 죽었으니 곧 날짐승과 가축과 짐승과 땅에서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사람이 죽었더라.
22 마른 육지에 있던 모든 것 중에서 콧구멍에 생명의 숨이 있는 모든 것이 죽었더라.
23 지면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들과 하늘의 날짐승이 멸망하였고 그들이 땅에서 끊어져 멸망하였으며 노아와 또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살아남았더라(창7:21-23).
이런 기사를 읽으면 누구라도 창세기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대체
누구일까?”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하는 성경 신자라고 하면 구약 시대 특히 모세 이전 시대에 살았던 욥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욥1:6 한편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 앞에 모습을 나타내려고 왔으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왔더라.
욥2:1 다시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 앞에 모습을 나타내려고 왔으며 사탄도 주 앞에 모습을 나타내려고 그들 가운데 왔더라.
욥38:7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모든 신학자들, 목사들, 성도들이 인정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요1:12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롬8:14,19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창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요1:12). 그런데 이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manifest, 롬8:19). 로마서 8장의 문맥을 보면 신약 성경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서 천년 왕국과 그 이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반면에 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시간 현재 드러나 있으며 욥기 38장 7절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영적 존재인 천사들임을 보여 줍니다. 마찬가지로 아담도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한 자이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눅3:38).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직접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창2:7).
유다서 6-7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들 중 일부가 자기들의 처음 신분(위치)을 지키지 않았음을 보게 되는데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곳들의 주변도시들이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음행에 내주고 낯선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된 것과 같으니라.
베드로후서 2장 4-6절도 동일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옛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실 때에 오직의 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들을 뒤엎음으로 정죄하여 재가 되게 하사 그 뒤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시고
성경은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천사들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증언합니다. 사실 이외의 다른 해석은 사적 해석에 불과할 뿐입니다. 강력한 칼빈주의자로서 강해 설교로 유명한 **존 맥아더 목사 역시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고 확언합니다.
** John MacArthur, 「맥아더 스터디 성경」(The MacArthur Study Bible). Nashville, London, Vancouver, and Melbourne: Word Publishing, 1997, p. 24.
어떤 분들은 천사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낳을 수 있느냐고 반대를 제기하지만 성경은 천사들이 아이들을 낳을 수 없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반대 주장을 펴는 이들은 마태복음 22장 30절을 인용합니다.
마22:30 부활 때에는 그들이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하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으니라(참조 막12:25; 눅20:33).
이 구절은 천사들이 아이들을 낳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위치(신분)를 버리고 떠났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런 반역을 통해 그들은 더 이상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또한 성경대로 믿으면 모든 천사의 성은 남성이며 날개 같은 것도 없고 아기 천사 같은 것은 신화 속에서나 가능합니다. 에스겔서 1장의 날개 달린 창조물은 그룹으로서 천사가 아니며 이사야서 6장의 날개 달린 창조물은 스랍으로서 역시 천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천상의 존재들입니다(「천사와 UFO 바로 알기」를 참조하기 바람).
그런데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이렇게 명백한 해석이 갑자기 ‘경건한 셋의 후손들’로 바뀌는 일이 역사 속에서 발생하였고 그 일은 천주교의 국가 교회 교리를 확립한 어거스틴이 자기 생각을 지지하기 위해 영해를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시」를 저술하기 위해 유대인들과 어거스틴 이전의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이 믿던 신앙을 180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즉 그는 창세기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을 ‘경건한 셋의 후손들’과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 글은 어거스틴의 이런 해석이 왜 문제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창세기 6장의 1차 수신자는 구약 시대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모세 오경) 해석에 관한 한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어떻게 믿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물론 구약 성경이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지만 유대인 역사가들이나 성경 이외의 그들의 작품이 무어라 이야기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유대인 역사가 중에서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아마 요세푸스일 것입니다. 신학교에 가면 누구라도 요세푸스에 대해 조금은 배울 것입니다. <위키백과>는 요세푸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틴어: Flavius Josephus, 37-100)는 1세기 제정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다. 주후 66년에 발발한 유다이아 전쟁에서 그는 유대군을 지휘하여 로마군에 맞섰으나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투항하여 정보를 제공해 주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 시민이 되었다. 그는 티투스의 막료로서 주후 70년 예루살렘 함락의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훗날 이 전말을 「유대 전쟁사」라는 책으로 남겼다.
요세푸스의 글은 구약 시대의 역사를 보여 주는 데 매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그의 책들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늘 참고하는 고전입니다.
예수님 승천 바로 이후에 살았던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뿐만 아니라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기술해 놓은 책입니다. 여기에는 창조부터 시작해서 구약 시대의 중요한 사건들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통파 유대인들이 이런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유대인들의 견해가 다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과거를 담은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이런 글을 통해 살펴볼 수 있으니 참조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기사는 「유대 고대사」의 1권 3장에 나오는데 여기서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많은 천사들이 여자들과 함께하며 불의한 아들들 곧 선한 것을 멸시하는 자들을 낳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에 따르면, 이 남자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헤라클레스 같은] 거인들이라고 부른 자들의 행위와 비슷한 일을 행하였다. 참고로 여기에 붙은 각주는 “타락한 천사들이 어느 면에서 과거의 거인들이었다는 개념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내려온 의견이었다.”로 되어 있다.
유대인들의 이런 증언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는 것을 확고히 지지해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은 후이(Bryan Huie)가 요약한 다음의 글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 https://www.douglasjacoby.com/sons-of-god-by-bryan-t-huie/
① 예수님 당시의 역사가였던 요세푸스가 정통파 유대인들이 거인 종족을 믿었음을 보여 준다.
② 역시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인 필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③ 에녹서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④ 「주빌리의 책」(Book of Jubilees)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⑤ 주후 2세기에 살았던 저스틴 마터(순교자 저스틴)도 「두 번째 변증」(Second Apology) 5장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⑥ 주후 240년경에 살았던 북아프리카의 주교도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⑦ 베드로후서 2장 4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⑧ 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는 모든 구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창6; 신32:8; 욥1:6; 2:1; 38:4; 시29:1; 89:5 등).
⑨ 유명한 성경 학자인 벌링거(E. W. Bullinger, 1837-1913) 역시 그의 유명한 저서 「Companion Bible」에서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⑩유다서 6절이 같은 견해를 지지한다.
⑪ 야살의 책 4장 18절은 짐승들도 혼합되어 하이브리드 종류가 나온 것을 보여 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짐승을 모두 물로 심판하셨다(창6:7).
⑫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1장 7절 역시 이를 지지한다.**
** 우리는 요세푸스, 필로, 에녹서, 주빌리의 책, 야살의 책, 저스틴 마터나 북아프리카의 주교의 말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이라고 결코 믿지 않는다. 다만 유대인들의 고대 문헌들이 한결같이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천사들이라고 증언하였음을 보일 뿐이다.
이런 증언들을 통해 우리는 구약 시대 유대인들과 주후 300년 이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들’이라는 견해를 초지일관 유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언제부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연구는 참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주며 <위키백과>는 이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 <위키백과>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 항목
① 어거스틴 이전에 고대 작가들이 만장일치로 지지하던 견해는 창세기 6장의 거인(네피림)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타락한 천사들 - 외경에서는 이들을 순찰자라고 부름 - 과 사람들의 여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종족이라는 것이다.
② 그런데 어거스틴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후손으로 보았다. 어거스틴은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의 연설에 의거하여 자신의 책 「하나님의 도시」(신국)에서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아담의 순수한 혈통을 가진 셋의 후손들로, 사람들의 딸들은 타락한 가인의 후손들로 정의하였다. 그 이유는 타락한 가인의 후손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들과 결혼하여 혼혈 종족을 낳음으로써 순수한 종교를 부패시켰다고 그가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도시」의 원제목은 「이교도들에 맞서는 하나님의 도시」(On The City of God against The Pagans)이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시대에 로마를 침략하는 이교도들을 순수한 종교를 부패시키는 자들로 보았고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창세기 6장 사건을 이교도들의 침략과 같은 것으로 영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역사는 매우 분명하게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에서 ‘경건한 셋의 후손들’로 바꾼 장본인이 바로 어거스틴임을 보여 줍니다.
잘 알다시피 어거스틴은 성경적으로 볼 때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천주교회를 위해 연옥 교리를 만들고 영혼의 자유를 지키려는 성도들을 잡아 죽이며 교회가 곧 왕국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인물입니다. 그는 구약 성경의 이스라엘(유대인)을 신약 시대의 교회로 대체함으로써 천년 왕국 같은 실제적 왕국은 이 땅에 없다고 주장하는 ‘무천년주의’를 도입하고 그 교리를 확립한 인물입니다. 비록 그가 천주교회의 성인의 반열에 올라 ‘성 어거스틴’이라 불리지만 성경 신자들은 천주교회의 성인들이란 한결같이 ‘믿음+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므로 성경적으로는 ‘다른 복음, 저주받은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요,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에 힘입어 천주교회는 그 뒤로 무려 1,000년 이상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유대인과 성경 신자 말살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이것을 역사는 **‘반셈족주의’(Anti-Semitism)라고 부릅니다.
** 이 말의 영어식 표현을 직역하면 ‘셈족에 대한 반감’이란 뜻이지만 실제로 이것은 셈족 전체가 아니라 유대인 혹은 유대 민족에만 해당된다. 유럽 모니터링 센터는 반유대주의를 다음과 같이 상세히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인식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고 유대인 개개인과 그들의 재산, 또는 유대인 공동체 기관과 유대교 종교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가하는 것인데 공격의 대상은 유대인들의 집합체로 여겨지는 이스라엘 국가도 포함된다.” 반셈족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기독교 - 사실은 천주교 - 가 유럽에 확산되면서 유대인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Christ killers)로 증오한 것에서 기원을 찾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마르틴 루터도 반유대주의자였다.<나무 위키>
천주교회는 유대인 자체를 말살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도 말살하려 했고 바로 이런 시도 중의 하나가 자신들의 왕국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의 개념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에 이르기까지 1,000년 이상 유대인들과 성경 신자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카톨릭주의의 무지와 미신에 갇혀 살게 되었고 이에 역사는 이 시기를 중세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는 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고 이에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십자군 전쟁도 일으켰습니다. 이런 비성경적 카톨릭주의와 반셈족주의의 기반을 놓아준 인물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1517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1535년경부터 프랑스 출신의 칼빈이라는 또 다른 어거스틴주의자가 일어나 스위스 제네바에 신정 정치 국가를 세우면서 장로교라는 교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의 칼빈주의는 그 원천이 어거스틴에게서 나왔으므로 엄밀하게는 어거스틴주의라고 불려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로교회들은 불신자였던 어거스틴을 크게 신봉하고 따라서 장로교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 역시 유대인 말살과 성경 신자 배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칼빈도 어거스틴처럼 자기의 믿음을 반대하던 자들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숙청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들은 당연히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라는 가르침을 전파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세 청교도들과 경건한 주석을 지은 매튜 헨리, 미국의 대각성을 이끈 조나단 에드워드 등이 기록한 구약 성경 관련 글들을 읽으면 내용이 한결같이 이스라엘 대체 신학 혹은 배격 신학임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글에서는 당연히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제나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되고 맙니다. 이들의 교리적 근원은 어거스틴이므로 이런 주제에 대한 그들의 글은 언제나 거기서 멈추고 결코 성경 자체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천주교회처럼 유대인들의 귀환과 천년 왕국의 확립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언과 관련된 성경을 거의 다 영해(靈解)합니다. 그 결과 창세기 6장도 이런 맥락에서 영해가 되어 타락한 천사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어떤 견해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이요, 교회는 교회이지 이 둘이 혼합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동에 있는 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이 참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영원토록 팔레스타인 가나안 땅을 차지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재림하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의 때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는 다니엘서 2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예수님의 재림 바로 전에 있을 넷째 왕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0 넷째 왕국은 쇠같이 강할 터인데 쇠는 모든 물건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며 정복하므로 이모든 것을 부수는 쇠같이 그 왕국이 모든 것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고 상하게 하리이다.
41 왕께서 그 두 발과 발가락들이 얼마는 토기장이들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신 것 같이 그 왕국이 나뉠 것이나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같이 그 왕국에 쇠의 강함이 있으리이다.
42 그 두 발의 발가락들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 것같이 그 왕국도 얼마는 강하되 얼마는 부서질 것이며
43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신 것같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나 쇠와 진흙이 섞이지 아니함 같이 그들이 서로에게 달라붙지 못하리이다.
44 이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할 것이며 도리어 이 모든 왕국들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서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43절에 보면 ‘그들이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을 것’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문맥을 따라 읽으면 그들은 당연히 사람들의 씨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의 씨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습니다.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천년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전에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나 롯의 때에 자신을 사람들의 씨와 섞으려 했던 존재들이 누구일까요? 성경이 명료하게 답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전혀 다른 번역으로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개역성경)43절: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 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는 20세기에 미국에서 창조 과학을 확립한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그는 토목 공학 박사이며 창조 문제와 창세기에 관한 한 이분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리스는 생전에 「창세기 기록」(Genesis Record)이라는 매우 두꺼운 창세기 주석을 썼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조에 의해(created) 존재한 자들이며 사람에게서 태어난(born) 자들이 아니다. ‘강력한 자의 아들들’ 같은 표현도 역시 천사들을 가리킨다. 창세기 기자의 의도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한 타락한 천사들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성경의 명백한 진리를 순리적으로 분명하게 보여 줘도 이미 성경대로 믿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굳게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득 노력이 아무 효과가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과 칼빈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이런 주제에 대해 무슨 진리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의 해석에 넘어가지 않도록 성경대로 믿는 바를 간략하게 진술하였을 뿐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성경을 영해하는 사람들의 헛된 전통과 교리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평범하게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완전한 성경이 우리 손에 있음과 그 성경을 성경으로 풀 때 하나님의 진리가 단순하게 우리에게 전달됨을 믿을 뿐입니다.
이렇게 보존된 성경으로 성경을 풀 때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반드시 타락한 천사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만이 성경 신자들이 확신할 수 있는 온전한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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